건물은 내부와 외부를 다른 공간으로 단절시킨다. 건물의 외관은 주변 환경과 융화되어 그 장소에 깊이 관여하면서 전체 이미지를 형성한다. 건물은 동선과 같은 인간의 생활 양상을 결정지으며 인간의 시간에 맞추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환경과 호흡한다. 갤러리 빙은 이러한 모습을 여러모로 내재하고 있다. 특히 반사 형태의 표면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재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다. 갤러리 빙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 일정한 격자무늬 패널은 지금의 모습을 모던하게 분할하는 동시에 견고하게 결합시키는 복합적인 양상이다. 건물에 불규칙하게 늘어선 반사된 풍경은 그 일부가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마치 구상적인 모습들이 건물을 투과해 추상화로 투영되는 듯하다.

갤러리 빙의 그리드 복합 패널은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볼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내부가 보이지 않는데, 이러한 표면에 갤러리 빙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다양한 풍경을 수집해서 넣었다.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았을 때의 이미지를 그대로 건물 외관에 표현한 부분도 있으나 몇십 년간 맞은편 방향에서 보인 모습만이 아닌, 건물의 다른 반대편 풍경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 다른 각도나 다른 시간의 그 장소, 근거리와 원거리의 풍경, 또는 과거에 그곳에서 반사되었던 풍경 등이 재현되기도 한다.

건물 표피가 생명체의 피부와 같이 이미지로서 유연하게 흡수되어 변화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느낌을 연출하고자 했다.
이는 갤러리 빙이 지니고 있는 모습들을 한데 모아 환경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과거와 현재를 품고 있는 다각적인 모습의 반영이다.

갤러리 빙은 건축가 김원의 1986년 작품으로 예술적이고 다층적인 조형언어를 제시함으로써 단순하고 무표정한 격자형 육면체 건축의 총체성이 팽배하던 당대의 풍광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귀금속 판매/전시장이자 금속 공예 분야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갤러리 목적으로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지은 건축물로, 주변에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하얏트 호텔에 압도되지 않고 그와 평등한 시각적 상관관계를 유지시키고자 한 건축가의 고민이 잘 드러난다. 건축가는 호텔 건축물이 갖고 있는 격자무늬의 기하학적 그리드를 그대로 갤러리 빙 건축물의 기본 조직으로 도입, 이를 시스템과 구조에서 입체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3차원적으로 호텔 건축물과 같은 표피를 가지면서도 조형적으로는 사방이 서로 다른 건축물로 발전시켰다. 일정한 그리드 패턴을 활용해 자유로운 조직 결합을 실험함으로써 한 가지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고 다양한 표정을 담은 건축물을 창조해낸 것. 또한 실내에는 메로 구조를 사용함으로써 외부와 내부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바닥, 벽, 천장 등 모든 건축적 구조가 서로 같은 조직이 되도록 배려했다. 건축물에 주재료로 사용된 알루미늄 복합 패널은 이미지를 반사하는 특성을 통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현실적 풍경과 이미지를 건물 안에 담아낸다. 결과적으로 갤러리 빙은 주변 환경과 경쟁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오히려 주변의 거대 건축물이 갤러리 빙을 감싸 안고 있는 듯한, 모래 속 진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SPACE, 2009년 11월호